| 사이트맵 | 매직노트 | 사전검색창 달기
로그인
아이디
비밀번호
회원가입  |  ID/PW찾기
지식 컬럼
지식 도시락
톡톡 지식
세상에 이런일도
한줄지식
고사성어와 속담
투자 전략
2007대학다이어리
2007지식다이어리
> 지식컬럼 > 지식도시락
*  제  목 백제 ‘삼천궁녀’는 원래 한 명?
*  글쓴이 admin *  작성일 2012-10-20
*  내  용

 
'망국의 꽃’은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과 삼천궁녀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작품인데...

하지만 수많은 늘씬한 미녀들이 등장하는, 섹시하면서도 스펙터클한
장면을 기대한 관객은 실망할 수 있답니다.

이 작품에는 삼십 명의 궁녀도 나오지 않기 때문인데.....

작가는 역사 속 삼천궁녀를 3000명이 아닌, 현재, 과거, 미래를
뜻하는 불교 용어인 ‘삼천’(三天)의 이름을 가진 단 한 명의 궁녀로
비틀어 해석하는 재치를 발휘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백제의 삼천궁녀 이야기는 백제가 멸망하던 날, 낙화암에서
백제 궁녀 3천명이 백마강에 투신 자살한 것을 말하는데,

실제 역사에서도 백제가 멸망하던 날, 궁녀들이 백마강에 투신
자살한 것은 사실로 확인이 된답니다.

삼국유사를 쓴 일연(一然)의 기록에 의하면, 그 날 궁녀들이
왕포암(王浦巖)에 올라가 물로 뛰어들어 자살했다고 전하는데,

그러나 당시 투신 자살했던 궁녀들의 숫자는 기록에 나오지 않는답니다.

기록에 의하면, 백제가 패망할 당시 수도인 부여에는 총 1만 가구가
살았으니 인구는 4만5000명 정도였으며, 2500명의 군대가 있었는데
가장 의심스러운 것은 바로 이 부분입니다.

인구 4만5000명에 군대는 2500명이었던 도성에서 3000명의 궁녀를
먹여 살린다는 것이 당시의 농업 생산력이나 주거 공간을 감안할 때
과연 가능했을까요? 이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랍니다.

지금 부여의 인구가 9만5000명인데 현재의 도시 능력으로도 궁녀
3000명을 거느리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또 부여 어디에 3000명을 수용할 주거 공간이 있는가? 그렇다면
‘3000 궁녀’라는 말은 누가 먼저 했을까요?

안정복(安鼎福)의 기록(‘동사강목’ 권2 경신년 추 7월 조)에 따르면 
‘여러 비빈들(諸姬)’이 자살한 것으로 되어 있을 뿐입니다.

결국 의자왕과 낙화암에 관한 역사는 허구인데 그에 관한 어떤
일차사료도 발견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것은 일제시대 식민지
사학자들이 백제를 비하하기 위해 꾸며낸 얘기에 지나지 않는답니다.

그들은 의자왕이 황음무도(荒淫無道·주색에 빠져 사람으로서 마땅히
할 도리를 하지 않음)했고,

궁녀 3000명을 데리고 살았다는 식으로 역사를 곡필했으며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는 자료로 그를 인신 공격했답니다.

목록
회사소개 인사말 | 임원진 | 사업소개 | 데이터소개/솔루션소개 |  레퍼런스 | 연락처
매직노트 매직노트
지식컬럼

지식도시락 | 톡톡지식 | 세상에 이런일도 | 한줄지식 | 고사성어와 속담 | 투자전략 | 세계의 대학 500위

지식뽐내기

UCC사전 | UCC 지식정보 | 당신의 네모는? | 나도 한마디 | 이런용어없나요? | 퀴즈

고객센터

FAQ | 공지사항 | 게시판 | 회원가입 | ID/비밀번호 찾기 | 개인정보취급방침 | 사이트맵

Copyright ⓒ 지식을 다함께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