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1년 레판토에서 오스만 제국이 교황 비오 5세와 지중해 가톨릭 해상 국가들로 조직된 신성 동맹에 패배하여 지중해의 패권을 상실한 전투를 말한다.
스페인은 아메리카 대륙 곳곳에 식민지를 건설하고 1571년에는 교황청, 베네치아와 신성동맹 연합함대를 결성, 레판토 해전에서 오스만튀르크를 격파함으로써 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했다. 그러나 17년 뒤 압도적인 전력으로 영국 침공에 나섰으나 수는 적지만 훈련이 잘된 영국 해군에 져 내리막길을 걸었다.
해전
1521년 오스만제국의 술레이만 대제는 로도스 섬으로 함대를 파견했다. 로도스 섬은 세계의 중심으로 불렸던 지중해의 전략적 요충지였다. 이슬람계와 기독교계의 60년에 걸친 해전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1560년까지는 오스만제국이 지중해의 권력을 잡아갔다. 해적들과 동맹을 맺어 지중해 해전 때 아군을 늘렸던 데다 유럽 각국이 신-구교의 대립과 이해관계의 충돌로 혼란스러웠던 상황을 이용했던 것이다.
1560년부터 5년 동안 벌어진 몰타 섬 공방전에서 전세가 역전됐다. 600여 명의 기독교계 방어군인 구호기사단이 3만여 오스만제국군에 맞섰다. 4시간이면 끝날 거라던 전쟁은 4개월이나 계속되었다. 결국 1571년 오스만제국과 기독교연합군이 맞붙은 레판토 해전이 종결점이 됐다.
바다에서 격돌한 이 싸움은 4시간 동안 이어졌다. 이 짧은 시간에 동맹군은 튀르크 배 100여 척을 침몰시키고 137척을 나포했다. 전사한 튀르크군만 2만5000명. 병사들이 흘린 피로 바다는 선지처럼 변했으며 기독교연합군 함대는 ‘물에 떠다니는 시체들에 막혀’ 그곳을 벗어날 수도 없었다. 레판토 해전은 세계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전투 중 하나로 기록됐다.
함포의 승리
함포가 해전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571년 레판토 해전이었다. 당시 오스만 터키 제국 함대와 베네치아, 제노바, 스페인 연합의 신성동맹함대는 레판토 앞바다에서 대규모 해전을 벌였고, 함포로 무장한 신성동맹함대는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대승을 거둔다.
당시 오스만 터키 제국 함대는 최상의 궁수들이 있었지만, 함포의 사거리와 위력에 상대가 되지 못했다. 결국 2만 명의 사상자와 포로를 남기고 패퇴한다. 레판토 해전 이후 함포는 해전의 승패를 결정짓는 무기로 자리잡게 되었고, 전투함의 설계마저도 뒤바꾸어 놓았다. 1805년 트라팔가 해전 당시 영국 해군의 기함이었던 빅토리 호는 무려 100여문의 함포를 장착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