닝게토는 2002년이 저물던 날, 1953년부터 시작된 제야의 종 타종행사에는 50년 만에 처음으로 외국인이 참가했다. 스위스 출신 간호사였다. 은빛 머리색 때문에 '스위스 할머니'라고 불리며 화제가 됐던 그는 당시 17년간 한국에서 봉사와 나눔을 실천한 시민대표로서 보신각에 섰다.
1946년 스위스 라이미스빌에서 태어난 닝게토는 한국이란 나라를 전혀 알지 못하는 평범한 간호사였다. 1972년 당시 독일과 스위스에 파견된 한국인 간호사들과 같은 병원에서 일을 하면서 한국과 인연을 맺게 됐다. 1975년, 한국을 처음 찾아 두 달간의 휴가를 보냈다. 가난하지만 인정이 넘치는 사람들의 정에 이끌려 한국을 드나들던 닝게토는 한국 아이들을 후원하기 시작했다. 스위스에서 간호사로 일하며 번 돈으로 대구와 부산의 부모 없는 아이들을 도왔다.
그렇게 조금씩 한국과의 인연을 다지던 닝게토는 1985년 아예 짐을 싸들고 한국에 와 자리를 잡았다. 전남 광주 영진육아원이 그의 첫 근무지였다. 닝게토는 거기서 간호사로 일하며 부모들이 팽개친 한국 아이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그 뒤로 광주 베텔타운양로원, 울산 울주군의 장애인시설 화정원, 경기도 용인보육원, 전북 군산의 장애인시설 구세군캐더린목양원(현 군산 목양원)등, 2003년 은퇴할 때까지 20여년 동안 대한민국 곳곳의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과 장애인, 노인들을 보듬었다.
현재 그녀는 국제구호단체인 월드비전을 통해 27명의 해외아동을 1대1 결연후원하고 있다. 그녀가 몽골·말라위·스리랑카·에티오피아 등 닝게토가 국적을 불문하고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무한한 사랑을 베푸는 이유는 어린 시절 가정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사실 그녀는 “다시 태어난다면 다른 부모를 만나고 싶다”고 할 정도로 힘겨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자식들을 제대로 돌보지 않는 부모 때문에 친척집이나 아동시설에 머물기도 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