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세기경 페르시아로부터 시작된 마니교는 ‘빛의 사도’, ‘빛을 비추는 최고의 자’로 알려진 마니(Mani : 210? ~ 276) 페르시아에서 창시한 이원론적 종교운동에서 시작된 종교이다.

초기에는 그리스도교, 조로아스터교(Zoroaster敎-기원전 6세기경 조로아스터가 창시한, 페르시아의 고대 종교《선·악 이원론을 가르치며 아베스타를 경전으로 함》. 배화교拜火敎), 불교의 여러 요소를 혼합하고 있다하여 이단으로 여겨졌으나,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배화교)에서 갈라져 나오고, 교리를 일관되게 정리하고 바로 세워 고유한 종교로 자리 잡게 된다.
 
유물론적 이원론으로 세상은 빛과 어둠의 투쟁 상태에서 생겨났다고 본다. 인간의 영을 어둠 속에 있는 빛으로 보았다. 배화교는 불을 공경하는 종교라는 뜻으로 자라투스트라교(영어식 조로아스터교) 기원전 1800년경에 중동의 박트리아 지방에서 자라투스트라에 의해 세워진 종교를 말한다.

기원전 600년경에 오늘날 이란 전역에 퍼졌으며 기원전 5세기에는 이미 그리스 지방까지 전해졌다. 조로아스터교는 창조신 아후라 마즈다 (Ahura Masda) 중심으로 선과 악의 질서 세계를 구분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이원론적 교리는 그리스도교, 유대교, 이슬람에 영향을 주게 된다.

마니교 특징은 스스로 참된 그리스도교라고 주장하는데 있다. 마니교회에서 ‘선택된’ 고위 성직자들은 철저한 금욕생활을 하였으며 독신이었다. 육체적인 것은 모두 어둠의 세력에 봉사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니의 선교 활동은 처음에는 방해를 받지 않았으나, 후에 페르시아 왕국으로부터 박해를 받아 감옥에 갇히게 된다.

마니교도들이 ‘빛을 비추는 자의 고통’ 또는 ‘마니의 수난’이라 부르는 26일 동안 재판을 받은 제자들에게 마지막의 이야기를 남기고 죽는다. 마니교는 간단명료한 교의(敎義) 예배 양식, 엄격한 도덕계율이 있었다. 그 교의는 밝고 환함ㆍ어질고 좋음, 어둠ㆍ올바르지 않음의 유물론적 이원론과 진리에 대한 영적인 지식을 통해 구원에 이른다는 영지주의를 본바탕으로 하고 있다.

영지주의는 그노시스파라 하며 그노시스(Gnosis) ‘지식’(그리스어)이라는 말로 물질이 아닌 보이지 않는 영을 뜻하며, 그노시스파(Gnosticism)는‘지식’으로 육체를 초월하여 구원을 얻을 있다는 믿음을 중심 사상으로 가지고 있다. 또한 그노시스파는 극단적인 선과 악으로(이원론) 세상을 바라본다.

세상에는 선한 신과 악한 신이 존재하고 있고 선한 신에게서는 보이지 않는 지식인 영이 나오고 악한 신에게는 악의 근원이 되는 물질이 나온다고 믿으면서 인간의 선한 영혼이 죄와 악으로 물든 육체에 갇혀 있다고 생각했다. 다른 영지주의처럼 마니교는 인간의 영혼은 타락하여 (물질) 섞여 있지만, 영혼과 지혜는 이를 해방시킨다고 보고 있다. 과정을 신화를 통해 3단계로 설명하고 있다.

① 물질세계에 있는 구체적이며 개별적인 존재들이 그리 될 수밖에 없는 것으로 맞서는 실체는 영혼과 물질, 선과 , 빛과 어둠이다. 이들이 분리되는 과거 시기.
실체가 합쳐 하나로 모아지는 현재.
본래 있던 2가지 특징과 성질이 새롭게 다시 만들어져 정해지는 미래.

신화에 따르면 떳떳하고 옳은 사람의 영혼은 죽어서 천국으로 돌아가지만 간음ㆍ출산ㆍ소유ㆍ경작ㆍ추수ㆍ육식ㆍ음주 육체에 관한 것에 정신을 기울이는 사람의 육체는 연속되는, 다시 살아남의 벌을 받게 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러한 마니교에 9년 동안 생활하면서 신분이 낮은 집안 출신의 여자와 사이에 아들을 낳게 되고 그 아들을 몹시 아꼈다.

이후 낮은 직책인 상대편이 하는 말을 듣는 직분을 받아 결혼이 허용되었다. 그러나 마니교에 대한 열정은 오래 가지 못했다. 마니교 지도자들은 아우구스티누스의 물음에 정확한 답변하지 못해 지적 수준의 낮음을 드러내고 말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실망한 아우구스티누스는 ()영지주의로 돌아서게 되며 로마에 가게 된다. 그 곳에서 암브로시우스 주교를 만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