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7년 스칸디나비아 3국인 노르웨이·스웨덴·덴마크 왕국이 단일 군주 아래 결속한다는 내용의 칼마르 동맹이 체결되었다. 그러나 스웨덴 국민들은 동맹에 불만을 품고 () 스텐 스투레가 이끄는 스웨덴의 ()동맹파를 결성했다.

반동맹파가 동맹 옹호자인 대주교 구스타프 트롤레를 투옥하자 덴마크의 크리스티안 2세는 1519년 대규모 용병군을 이끌고 스웨덴을 침공했다. 1520년 9월 스투레의 군대를 격파하고 스톡홀름을 점령한 크리스티안 2세는 11월 8~9일에 80명이 넘는 스웨덴 귀족들을 처형했다.

스웨덴과 핀란드 전역에 걸쳐 계속해서 처형이 자행되자 학살은 커다란 분노를 불러일으켰고 사실상 모든 스웨덴인 파벌들이 칼마르 동맹에서 등을 돌리게 되었다. 결국 1552년경 구스타프 1세 바사가 달라르나 지역의 농민들과 한자 동맹의 도움에 힘입어 스웨덴에서 덴마크인들을 몰아내고 칼마르 동맹을 해체했다.

탄생 해체
노르웨이 왕 호콘 6세의 왕비 마르그레테는 그녀의 부왕인 발데마르 4세와 그녀의 남편 호콘의 사후, 그 아들 올라프에게 덴마크와 노르웨이 양국의 왕을 겸하게 했으나, 실권은 자신이 쥐어 실질적으로 양국의 여왕으로 군림하였다.
 
마르그레테는 스웨덴 왕 알베르트에게 불만을 품은 반란군과 손을 잡아 알베르트를 격파하고, 올라프의 사후 노르웨이 왕위에 오른 에리크 7세를 스웨덴 왕위에 추대하였다(1389). 이어 1397년에 스웨덴의 동남부에 있는 칼마르 ()에서 3국의 귀족회의를 개최하고, 3국의 연합을 결의하게 했다.

이에 칼마르 동맹이 성립되어 유럽 최대의 왕국이 수립되었다. 동맹의 주도권은 덴마크가 잡고, 나머지 국가는 그 종속적 지위에 놓였다. 15세기 중엽부터 이에 불만이던 스웨덴에 독립의 기운이 일어나 연합은 약체화되고, 구스타프 바사(구스타프 1세) 이끄는 반란군이 크리스티안 2세를 격파하여, 1523년 독립을 달성하고 동맹은 해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