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대통령의 피살로 18년 독재 권력에 종지부를 찍음으로써 일시에 통치 공백과 정치, 경제, 사회적 위기와 혼란을 불러일으켰으며 10월 27일 10.26 사태로 비상계엄이 선포되었다.
사건개요
박정희의 신임을 받던 중앙정보부장 김재규는 당시 정보업무 수행의 무능을 자주 지적당하고 차지철과의 관계에서 불만이 쌓여 있었다.
김재규는 살해계획을 세우고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차지철 및 비서실장 김계원 등과 궁정동의 중앙정보부 밀실에서 만찬을 함께 하던 중, 박정희대통령이 부마사태에 관련하여 책임을 추궁하고 차지철이 심하게 공박을 가해오자 만찬회장에서 나와 권총을 가져오면서 직속부하 박흥주·박선호에게 총소리가 나면 경호원을 사살할 것을 지시하는 등 준비를 갖추었다.
만찬회장에 돌아온 그는 박정희대통령과 차지철에게 각각 2발씩을 쏘았다. 김재규는 대통령살해범으로 체포되었고, 사건 다음날 전국에 비상계엄령이 내려졌다. 수사는 계엄사합동수사본부에 의해 진행되어 김재규와 김계원·박흥주·박선호에게 사형이 선고되었고, 김계원을 제외한 나머지 전원에게 사형이 집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