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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 박규수
(한줄요약) 朴珪壽 : 조선말기에 문신 개화 사상가.(1807년~1877년)
서울 계동 출신 북학파 거두 지원의 손자. 1856년 애로호 사건에 관련, 1862년 7월 제너럴 셔먼호 사건 관련, 김극호 박영효 김윤식 유길준등을 배출.

박규수는 조선 말기의 문신이자 개화사상가로 북학파의 거두인 박지원의 손자이다. 가세가 빈한하여 어려서부터 주로 아버지 박종채에게 수학하였는데, 할아버지인 박지원의 연암집(燕巖集)을 통해 실학적 학풍에 눈을 떴고, 윤종의(尹宗儀)·남병철(南秉哲)·김영작(金永爵) 등 당대 일류학자와의 학문적 교류를 통해 실학적 학문경향을 한층 심화 시켰다.

1856년의 애로우호사건(Arrow號 事件)에 관련, 중국황제의 문안사절로 중국을 방문하여 국제정세의 흐름을 목격하였고, 심병성(沈秉成) 등 80여명의 중국문인들과의 교류를 통해 견문을 넓힐 수 있었다. 1862년 2월에는 진주민란의 사태수습을 위한 안핵사에 임명되어 민란의 진상을 조사, 보고하였다. 이는 그가 국내 현실을 똑바로 직시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1866년 2월 평안도 관찰사로 전임되었는데, 그가 평안도관찰사로 있을 당시에 미국의 무장상선 제너럴셔먼호사건(General Sherman號事件)이 발생하였다. 그뒤 대제학에 재임중 1872년진하사(進賀使 중국 황실에 경사가 있을때에 축하의 뜻으로 보내던 사절)의 정사(正使)로서 서장관 강문형(姜文馨), 수역(首譯) 오경석(吳慶錫)을 대동하고 두번째 중국에 다녀왔다.

2차중국 사행을 통해 그는 서양의 충격에 대응하는 청국의 양무운동(洋務運動)을 목격하면서 개국(開國)·개화(開化)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귀국후 그는 흥선 대원군에게 개국의 필요성을 여러 차례 역설하였으나 뜻대로 실현되지 못하자 1874년 9월에 사직하고, 국정의 제일선에서 물러나제자양성에힘썼다.

이시기 그가 사랑방에 출입하는 젊은양반 자제들에게 '연암집'을 강의하기도 하고 중국에 내왕한 사신이나 역관들이전하는새로운사상을전수함으로써, 개화운동의선구적인물들이 그속에서나타나게되었다. 손해를 볼지라도 한 점 부끄러움 없게 처신하다.

박규수는 관직에 재임하는 동안 벼슬이 우의정에 이르렀으나 그의 집은 몹시 빈한했다. 계동(桂洞)에 있던 그의 옛집은 마치 가난하고 권력 없는 선비가 살았던 집과 같고, 다만 뜰 앞에 소나무 한 그루가 있어 박규수의 맑은 풍모를 생각나게 했다고 한다. 박규수는 빈한한 가운데에서도 자신의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백성과 다투는 것을 원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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