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신학의 교부'라고 불릴 정도로 기독교계에 큰 영향력을 행사해 온 신학자로 20세기 그리스도교계에 가장 커다란 영향력을 미친 신학자다.
평생을 그리스도교 복음을 이 땅에 선포하는 데 관심을 기울인 그는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부정과 긍정을 함께 다루기 위해 평생을 매진해 왔다. 이른바 신정통주의, 변증법적 신학으로 표현되는 그의 신학 사상에는 그러한 그의 고투가 담겨 있다.
스위스 바젤에서 베른 신학대학의 신약학 교수인 프리츠 바르트(Fritz Barth)의 아들로 태어났다. 베른, 베를린, 튀빙겐, 말부르크 대학에서 하르낙, 헤르만 등으로부터 자유주의 신학을 배웠다.
1911년 스위스 자펜빌 교회에 목사로 부임해 10년간 사목한 뒤 1919년 출간된 로마서를 계기로 괴팅겐 대학교의 초빙을 받아 교수 생활을 시작했으며 뮌스터 대학교, 본 대학교 등에서 신학을 가르쳤다.
1934년 독일 나치 정권에 반대하는 바르멘 선언문 작성에 참여하고 총통에 대한 충성 서약 을 거부함으로써 교수직을 박탈 당하고 독일 내에서 강연 금지 명령을 받았다. 1935년 스위스 바젤 대학교 교수로 초빙을 받아 이후 27년간 교수 생활을 하다 은퇴한 뒤 1968년 12월 10일, 8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그리스도교 신학자 중 한 명으로 꼽히며 살아있을 때나, 세상을 떠난 뒤에도 교파와 국적을 가리지 않고 무수한 신학자들과 사상가,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미쳤고 또 미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