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의 많고 많은 섬 중에서도 빼어난 절경을 자랑하는 섬이다. 고산리 자구내 포구에서 보아 가장 큰 섬인 대섬(竹島)을 비롯해 북쪽에 와도, 남동쪽에 썩은섬 및 지실이도 등을 모두 일컬어
차귀도라고 한다.
차귀도는 파도가 없는 날에는 멀리 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고, 파도가 치는 날에는 아주 가깝게 떠 있는 것처럼 요술을 부린다.
차귀도의 면적은 0.16 평방킬로미터로 곰솔, 돈나무 등의 13종이 있고 양치식물과 초본류는 제주도에서만 자생한다고 한다. 특히 본섬인 죽도는 예전에 대나무가 많았다고 하며
차귀도를 포함해 고산리 일대는 1970년대 김기영 감독이 만든 영화 '이어도'의 주무대였다.
차귀도에 사람이 살고 있지 않는다. 처음부터 사람이 살지 않았던 것은 아닌데 1980년대 중반까지 일곱 가구가 보리, 감자, 콩, 수박, 참외 등 밭농사를 지으며 살았다고 한다. 1960년대 후반부터 국가에서
차귀도 사람들을 뭍(제주 본섬)으로 이주시키려고 했었다. 1968년 김신조 등 무장간첩 침투 이후 섬 주민들의 안전을 책임질 수 없었기 때문에 정부의 이주 권유로 이주했기 때문이다.
차귀도는 인근 바다가 사나워 조난사고가 많아 시체가 곧잘 이곳 포구로 들어와 주민들이 이곳에 액을 막기 위해 방사탑을 쌓았다고 한다.
차귀도와 관련된 설화 중에도 이곳 바다가 사나워 중국으로 돌아가던 배가 침몰했다는 내용이 있다.
차귀도에 얽힌 전설
옛날에 설문대 할망이 아들 오백형제를 거느리고 살았다. 어느 해 몹시 흉년이 들었다. 하루는 먹을 것이 없어서 오백형제가 모두 양식을 구하러 나갔다. 어머니는 아들들이 돌아와 먹을 죽을 끓이다가 그만 발을 잘못 디디어 죽 솥에 빠져 죽어 버렸다. 아들들은 그런 줄도 모르고 돌아오자마자 죽을 퍼먹기 시작했다.
여느 때보다 정말 죽 맛이 좋았다. 그런데 나중에 돌아온 막내 동생이 죽을 먹으려고 솥을 젓다가 큰 뼈다귀를 발견하고 직감적으로 어머니가 빠져 죽은 것을 알게 됐다. 막내는 어머니가 죽은 줄도 모르고 어머니 죽을 먹어치운 형제들과는 함께 못살겠다면서 애타게 어머니를 부르며 멀리 한경면 고산리 차귀섬으로 달려가서 바위가 되어버렸다. 이것을 본 형들도 여기저기 늘어서서 날이면 날마다 어머니를 그리며 한없이 통탄하다가 모두 바위로 굳어져 버렸다. 이것이 오백장군이다.
차귀도의 형성과 관련된 전설은 따로 있다. 비양도도 그렇지만 제주도도 섬의 형성만 아니라 다양한 신화와 전설에 중국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중국 송나라에서는 제주도는 장수가 날 지세라 하여 지맥을 자르기 위해 '고종달'이라는 사람을 보냈다.
그는 제주 지리서를 가지고 서쪽으로 가면서 지맥을 끊었고, 남제주군 안덕면의 산방산의 부근까지 다다랐다. 그런데 용의 형상으로 지리서에 왕과 장수가 날 곳이라 하여 그는 그 용 형상의 잔등을 끊게 되었고 잔등에서 피가 나와 주변을 물들였다.
그렇게 제주도 인물 맥을 끊은 '고종달'을 태운 배가 중국으로 돌아가려고 차귀도 앞을 지나자 어디선가 날쌘 매가 한 마리 다가와 배를 침몰시켰다. 한라산 산신의 노여움을 받아 태풍을 만나 죽게 된 것이다. 이에 조정에서 신령에게 제사를 지내게 하였고, 그 신령을 모신 곳이 차귀도였다. 그리고 '고종달'이 제주도 지맥을 끊고 중국으로 돌아가는(遮) 길을 차단(歸)했다고 해서 차귀도(遮歸島)라고 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