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1883∼1969)는 1919년 이 도시에서 ‘집짓기’를 뜻하는 종합예술학교 겸 작업소 바우하우스를 설립했다.
이 학교는 건축과 디자인을 주축으로 산업과 예술을 결합시킨 기능적 미학을 추구했고, 이 같은 이념은 당대의 미의식에 폭풍 같은 혁신을 몰고 왔다. 화가 바실리 칸딘스키, 파울 클레 등도 이 학교에서 교수로 활동했다.
1차대전 직후의 폐허에서 디자인을 ‘생산을 위한 원형의 창조’로 정의하며 새로운 바람을 몰고 왔던 바우하우스. 1925년 생산과 디자인의 더욱 유기적인 결합을 위해 공업도시 데사우로 이전했다.
그러나 데사우에서 맹위를 떨치기 시작한 나치의 압력 때문에 1932년 베를린으로 다시 이전했고, 이듬해 나치가 집권하자 이마저 문을 닫아야 했다. 60여 년이 흐른 1996년, 옛 바우하우스 자리에 둥지를 틀고 있던 ‘바이마르 건축대학’은 마침내 4개 학부를 둔 바우하우스대로 새 출발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