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융은 인격 전체를 정신(情神 psyche)이라고 부른다. 정신은 의식적인 사고, 감정, 행동뿐만 아니라 무의식적인 것까지 포함한다. 그에 의하면 인격(또는 정신)은 처음부터 하나의 전체로서 주어진 것이며, 경험과 학습을 통하여 부분적으로 획득되고 나중에 일관된 조직적 통일성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융에 의하면, 정신은 상호작용을 하는 두개의 수준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는 의식의 수준이고 다른 하나는 무의식의 수준이다. 무의식은 다시 개임 무의식과 집단 무의식으로 구별된다.
의식
☞ 개성화 (個性化) - 의식의 확대 (意識의 擴大)
융에 의하면, 정신에 대하여 개인이 직접 알고 있는 것은 의식이다. 의식은 사고(思顧), 감정(感情), 감각(感覺), 직관(直觀) 등 네 가지 심적기능을 통해 성장한다. 그러나 어떤 기능을 우선적으로 사용했는가에 따라 기본적인 성격이 달라진다.
또한 태도가 내향적이냐 외향적이냐에 따라 의식의 방향은 결정된다. 내향성의 태도는 의식을 주관적 세계로 향하게 하며, 외향성의 태도는 의식을 주관적인 세계로 향하게 한다.
개인의 의식이 타인에게서 분화되는 과정을 개성화라고 부른다. 개성화는 자기 자신을 아는 것으로서, 이른바 의식의 확대이다. 따라서 의식의 시작은 개성화의 시작이며, 의식의 성장에 따라 개성화도 완성되어 간다. 의식의 개성화 과정에서 자아라는 요소가 생겨난다.
☞ 자아 (自我) - 의식(意識)의 기구(機構)
자아는 의식의 기구로서 의식적인 지각(知覺), 기억(記憶), 사고(思顧), 감정(感情)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즉, 자아는 의식에 이르는 문지기이다. 자아에서 의식의 존재가 인정되지 않으면 관념이나 감정 같은 것은 자각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자아가 경험의 의식화를 허용하는 한에서 개성화를 달성할 수 있다.
자아가 의식화를 허용하느냐의 여부는 자아를 우세하게 지배하는 기능에 의해 결정된다. 첫째, 정서적 불안감이다. 불안을 야기하는 기억은 자각되기 어려울 것이다. 둘째, 개성화의 정도(程度)이다. 고도의 개성화된 자아는 많은 경험의 의식화를 허용할 것이다. 셋째, 경홈의 강도(强度)이다. 약한 경험은 자아의 문턱에서 쫓겨날 수 있다.
무의식 (無意識)
☞ 개인 무의식 (個人 無意識)
* 개인 무의식의 의미
자아(自我)에 인접해 있는 개인 무의식은 자아에 의해 인정되지 않은 경홈이 저장되는 곳이다. 즉, 개인 무의식은 정서적 불안감, 개성화의 정도, 경험의 강도에 의해 자아가 의식화를 허용하지 않은 모든 정신적 활동과 내용을 받아들이는 저장소이다.
개인 무의식의 내용들은 필요할 때에는 언제나 쉽게 의식에 접근할 수 있다. 가령 우리는 많은 친구의 이름을 알고 있다. 물론 친구의 이름들이 언제나 의식에 나타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필요할 때에는 상기할 수 있다. 의식에 나타나 있지 않을 때 친구의 이름들은 개인 무의식 속에 있는 것이다.
☞ 콤플렉스
융에 의하면, 개인 무의식 속에 있는 일군의 내용이 모여 콤플렉스라 불리는 하나의 집단을 형성하기도 한다. 콤플렉스란 무의식 속에 있는 감정, 사고, 기억 등이 하나로 연합된 집단으로서, 이 콤플렉스에 접촉되는 단어는 어느 것이든 더딘 반응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가령, 강한 어머니 콤플렉스에 지배되고 있는 사람은 어머니가 말하고 느끼는 것에 민감하며,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어머니와 관련된 것을 화제로 삼는다. 어머니를 모방하고 어머니의 친구에게 마음이 끌리며, 연상의 여성을 좋아한다. 또한 어른이 되어서도 어머니의 치마폭에서 떠나지 못한다.
반면 프로이트에 의하면, 초기 아동기의 외상적 경험(外傷性 體驗)에 의해 무의식이 형성된다. 즉, 3세 ~ 5세 사이의 어린이는 이성 부모에 대한 성적 욕구나 동성부모에 대한 경쟁의식을 통해 콤플렉스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엘렉트라 콤플렉스가 있다. 전자는 남자 아이가 어머니를 좋아하고 아버지를 경쟁상대로 보는 심리이고, 후자는 여자 아이가 아버지를 좋아하고 어머니를 경쟁상대로 보는 심리이다.
어떤 사람이 콤플렉스를 갖고 있다고 말할 때, 그는 무엇인가에 크게 마음을 빼앗기고 다른 것은 거의 생각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콤플렉스가 반드시 개인의 적응에 방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콤플렉스는 뛰어난 업적을 쌓는데 있어서 영감과 충동의 원천이 될 수도 있다.
☞ 집단 무의식 (集團 無意識)
* 집단 무의식의 의미
집단 무의식은 원시적 이미지라 불리는 잠재적(潛在的) 이미지의 저장소이다. 인간은 원시적(原始的) 이미지를 조상 대대로 물려받고 있으며, 인류 이전의 조상까지도 포함한다. 그러나 원시적 이미지는 개인이 의식적으로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세계를 경험하고 세계에 반응하는 잠재적 가능성 혹은 소질(素質)인 것이다. 예컨대, 우리가 뱀이나 어둠을 두려워하는 것은 유전적으로 이어받은 소질에 기인한다고 본다.
유전적인 진화의 메카니즘에 대한 두 가지 견해가 있다. 하나는 ‘이전의 세대가 경험에 의해 학습한 것은 미래의 세대에 유전되어 새로 학습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획득형질(獲得形質)의 이론으로서 리마르크의 진화설이라 불린다. 다른 하나는 ‘진화가 돌연변이라 불리는 배형질(胚形質)의 변화에 의해 일어난다’는 것이다. 즉, 돌연변이는 이전의 세대로부터 물려받으며 환경에 대한 적응에 불리한 돌연변이는 제거된다고 한다. 따라서 뱀이나 어둠에 대한 공포는 다음 세대에 유전될 수 있다는 융의 견해는 획득형질의 이론뿐만 아니라 돌연변이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 태고유형 (太古類型)
집단 무의식의 여러 가지 내용은 태고유형(太古類型) 또는 원형(原型)이라 불린다. 융에 의하면 출생, 죽음, 권력, 신(神), 영웅, 악마, 태양이나 강 따위의 자연의 대상 등 수많은 태고유형이 있다. 이러한 태고유형들은 집단 무의식 속에서 별개의 구조로 나타나기도 하고 서로 결합하여 나타나기도 한다. 가령, 영웅의 태고유형이 악마의 태고유형과 결합되면 무자비한 폭군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태고유형은 여러 가지 경험과 결합되어 콤플렉스를 형성한다. 가령, 개인이 신(神)의 태고유형과 관계가 있는 경험을 함으로써 개인의 행동이 신 콤플렉스에 의해 결정된다. 즉, 개인은 모든 일을 선악(善惡)의 기준에서 판단함으로써 죄악을 저지른 자를 비난할 것이다. 이러한 콤플렉스가 극단적으로 나타나면 광신자가 될 것이지만, 인격의 일부로서 기능하면 구도자(求道者)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융은 모든 인간의 인격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태고유형으로 페르소나, 아니마와 아니무스, 그림자, 자기 등 네 가지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인다.
① 페르소나(persona)
페르소나는 극중에서 특정한 역할을 하기 위해 쓰는 가면을 말한다. 개인은 페르소나에 의해 반드시 자기 자신의 성격이 아닌 성격을 연기할 수 있다. 페르소나란 개인이 공개적으로 보여주는 가면이나 외관(外觀)이므로 사회적 인정을 받기 위해 가면을 바꾸어 쓰려고 한다. 페르소나에 의해 개인은 못마땅한 사람과도 친교를 맺음으로써 이익을 획득할 수도 있다.
페르소나는 인격에 유익할 수도 있고 유해할 수도 있다. 페르소나에 압도된 사람은 지나치게 발달한 페르소나와 자신의 본성이 갈등을 일으킴으로써 긴장 속에 살게 된다. 자아가 페르소나와 동일화(同一化)되는 것을 팽창(膨脹)이라고 한다. 페르소나의 팽창은 수준 높은 삶을 영위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열등감이나 자책감을 느끼게 함으로써 스스로 고독(孤獨)과 소외(疎外)의 늪에 빠진다.
② 아니마(anima)와 아니무스(animus)
페르소나가 정신의 외면(外面)이라면 아니마와 아니무스는 정신의 내면(內面)에 해당한다. 아니마의 태고유형은 남성 정신의 여성적 측면이고 아니무스의 태고유형은 여성 정신의 남성적 측면이다. 남자는 여러 세대에 걸쳐 여자와 접촉함으로써 아니마의 태고유형을 발달시켰고, 여자는 남자와 접촉함으로써 아니무스의 태고유형을 발달시켰다.
아니마의 최초의 투영은 언제나 어머니에 대해 행해지고, 아니무스의 최초의 투영은 아버지에 대해 행해진다. 그리하여 남자는 긍정적 혹은 부정적 감정을 일으킨 여자에게 아니마를 투영한다. 남자가 긍정적 감정(肯定的 感情)을 느끼면 여자는 남자의 아니마상과 동일한 성향을 갖고 있는 것이다. 반면 남자가 부정적 감정(否定的 感情)을 느끼면 여자는 남자의 아니마상과 상반(相反)되는 성향을 갖고 있는 것이다. 즉, 남자와 여자의 관계는 아니마와 아니무스에 의해 결정된다.
남자는 문화적으로 규정된 남성적인 역할에 적응하고, 여자는 여성적인 역할에 적응한다. 만일 외면(外面)의 페르소나가 우위에 있으면 아니마 또는 아니무스는 페르소나와 불균형을 이루어 아니마 또는 아니무스가 지나치게 반응하게 된다. 그러면 남자의 경우, 내면(內面)의 아니마를 강화하여 여자다워질 수 있다.
③ 그림자(shadow)
인간은 진화를 통해 형성되었으므로 동물적 본성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개인은 자신의 성(性)을 대표하려 함으로써 동성(同性)의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려 한다. 개인이 동성(同性)과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동물적 본성의 태고유형을 그림자라고 부른다.
그림자는 동성간(同性間)의 관계를 결정한다. 그림자가 자아에 의해 받아들여지고 정신 속에 조화롭게 깃들여 있느냐의 여부에 따라 동성간의 관계는 우호적이 되기도 하고 적대적이 되기도 한다. 동성과의 관계가 적대적이면 남자의 경우, 그림자를 다른 남자에게 투영한다.
그림자와 자아가 서로 조화를 이루면 개인은 의식이 확대되고 정신 활동은 활발해지며 신체적으로도 생동감이 넘친다. 개인이 그림자를 거부하면 인격은 무미건조해진다. 또한 그림자가 사회에 의해 지나치게 억압당하면 때때로 세계대전 같은 비참한 결과를 초래한다.
④ 자기 (自己, self)
융에 의하면, 자기는 인격의 조직 원리로서 집단 무의식 속의 중심적인 태고유형(太古類型)이다. 자기는 인격을 통일하고 일체성(一體性)과 불변성(不變性)의 감각을 준다. 인간은 자기의 발달을 통해 자기 삶은 더욱 자각하고 파악하며 이해하고 지배하는 힘을 갖게 된다.
자기의 무의식(無意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무의식의 억압된 요소를 다른 사람들에게 투영한다. 자기 자신의 결점을 자각하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의 결점을 남에게 전가하여 공격하고 비판한다.
의식(意識)과 무의식(無意識)의 상호작용(相互作用)
☞ 보상 (補償)의 경우
외향성(外向性)과 내향성(內向性)은 서로 약점을 보상한다. 의식적 자아의 지배적인 태도가 외향적이면 무의식은 억압된 내향적 태도를 발달시킴으로써 보상을 한다. 즉, 외향적 태도가 좌절되면 무의식의 내향적 태도가 전면(前面)에 나타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심적 기능(心的 機能) 사이에서도 보상이 이루어진다. 의식적인 면에서 사고와 감정을 중요시하는 사람은 무의식적인 면에서 직관적이고 감각적이다. 또한 남자의 자아와 아니마는 상보적(相補的)인 관계에 있으며, 마찬가지로 여자의 자아와 아니무스도 상보적인 관계에 있다.
☞ 대립(對立)의 경우
인격의 곳곳에는 대립이 존재한다. 페르소나와 그림자, 페르소나와 아니마, 그림자와 아니마 사이에서도 대립은 존재한다. 내향성은 외향성과 대립되고 사고는 감정과 대립되며 감각은 직관과 대립된다. 남자 속의 남자다움은 남자 속의 아니마와 갈등하고 여자 속의 여자다움은 여자 속의 아니무스와 갈등한다.
☞ 종합 (綜合)의 경우
대립이 종합에 이르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다. 인격의 초월적 기능 (超越的 機能)에 의해 대립의 종합은 달성된다. 이 초월적 기능은 인격의 대립되는 여러 가지 경향을 통일하여 전체성(全體性)을 지향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초월적 기능에 의해 自己의 태고유형이 실현된다. 융에 의하면 초월적 기능은 인간에게 나면서부터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