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 문학의 수호자로서, 고전 그리스 문학의 치밀한 연구자로서, 이슬람역사가로서, 저명한 대학 교수이자 교육부 장관으로서, 그리고 소설가로서그는 이집트 문화계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알미냐의 중하층 가정에서 13형제 중의 일곱째로 태어난 타하 후세인은서툰 안과의사 탓에 3세에 시력을 잃어 그는 80년 이상을 실명 상태로 살았다. 그러나 실명이 그의 정신적 강인함을 눅이지는 못했다.
타하 후세인은 카이로의 알아즈하르 대학에서 아랍 문학을 공부한 뒤 프랑스로 건너가 소르본에서 14세기 이슬람 학자 이븐 할둔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파리의 한 도서관에서 그는 일생의 반려가 될 쉬잔을 만났다.
쉬잔은 브라유 점자로 채 편집되지 않은 책들을 눈먼 이집트 청년에게 읽어주며 가까워져 마침내 그와 결혼했다. 타하 후세인은 이 프랑스인 아내를 쉬잔이라는 이름보다는 ‘달콤한 목소리’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이집트로 돌아온 타하 후세인은 카이로 대학에서 아랍 문학과 이슬람 역사를 가르쳤다. 그러나 아랍 고전시를 종교적 계율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해석한 것이 보수파들의 분노를 불러일으켜 이내 대학에서 쫓겨났다.
그는 그 뒤 이집트 최초의 근대적 민족주의 정당인 와프트당에 가입해 국왕 세력과 영국 식민주의에 맞서 싸웠고, 1950년 총선거에서 와프트당이승리한 뒤 교육부 장관이 돼 초등 교육의 의무화ㆍ무료화를 이뤄냈다.
타하 후세인은 열정적인 저술가였지만 이집트 바깥 세계에는 주로 그의 자서전 ‘알아이얌(나날들)’으로 알려져 있다. 이 책은 서방에서 갈채를 받은 최초의 현대 아랍 문학작품으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