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는 우옥(禹玉). 저장(浙江) 첸탕(錢塘) 사람이다. 영종(寧宗) 때 화원(畵院)의 대조(待詔)로서 금대(金帶)를 하사받았다. 인물화와 산수화에 능했다.
처음에는 이당(李唐)의 화법을 배웠으나 이에 범관(范寬)과 미불(米芾)·미우인(米友仁)의 화법을 가미시켜 일가(一家)를 이룸으로써 이당 이후 최고의 화가로 일컬어졌다. 그의 화법은 먼저 붓을 물에 적시고 난 다음 먹을 칠한 후 낙점(落點)을 하여 수묵이 빛나게 융화되고 힘찬 기운이 나타났다.
그는 마원(馬遠)과 같은 시대에 활동했으며, 유사한 풍격을 구사하여 '마·하'로 병칭되었다(→ 마원). 마원과 하규는 이당의 부벽준(斧劈皴)을 유효하게 사용했다. 눈부시게 퍼지는 안개를 표현하기 위하여 먹색을 잘 조화시켜 묘사했다. 마하파의 새로운 점은 공간에 대한 감각이다.
이는 화면의 한쪽에 풍경을 배치함으로써 끝없는 조망을 열어주는 역할을 한다. 이 두 화가의 다른 점이라면 마원은 대체로 안온하고 더욱 세련되고 꼼꼼하며, 하규는 표현주의 화가로서 붓으로 화면을 찌르고 자르는 듯이 보인다는 것이다.
이러한 하규의 양식은 명대의 절파(浙派) 화가들에게 강한 영향을 주었다. 일반적으로 하규의 작품으로 전해져오는 것은 대부분 절파의 창시자인 대진(戴進)과 그의 일파에 의한 모사품이다.
하규의 진적(眞蹟)에는 준엄한 화의(畵意)와 간결한 표현, 수묵과 갈필의 뛰어난 대위법(對位法), 함축적이고 효과적인 준법(皴法)이 있다. 그의 아들 하삼(夏森)은 아버지의 화풍을 배웠으나 그에 미치지는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