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인 1919년 6월. 승전국인 미국·영국·프랑스 등과 패전국 독일은 프랑스 베르사유궁전 ‘거울의 방’에서 강화조약을 맺었다. 이른바 베르사유조약이다. 440개조로 이뤄진 이 조약은 독일에 굴욕적인 것이었다.
독일은 모든 해외 식민지를 포기하고, 알자스 로렌 지방을 프랑스에 돌려줘야 했다. 전쟁 배상금 1320억마르크를 10년 안에 지불하고, 공군과 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으며, 육·해군 병력을 10만명 이내로 제한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가장 강경한 나라는 프랑스였다. 독일이 배상금을 현금으로 낼 수 없을 경우 대신 영토를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1923년에는 프랑스·벨기에 연합군 6만명이 독일 최대 공업지대인 루르 지방을 점령했다. 독일이 배상금을 제때 지불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독일인들은 파업으로 점령군에 맞섰고, 프랑스는 2년여 만에 루르에서 물러났다.
프랑스와 벨기에의 루르 점령은 독일 사회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독일 정부가 루르 노동자들의 생계를 위해 마르크화 발행을 늘리면서 독일 경제는 사상 최악의 인플레이션을 겪었다. 신생 바이마르 공화국은 집권 초부터 위기에 빠져들었다. 히틀러의 나치스는 이 틈을 교묘하게 파고들었다.
1933년 총리에 취임한 히틀러는 은밀히 독일을 재무장시키는 데 착수했다. 35년 3월16일에는 베르사유조약 파기를 선언했다. 히틀러는 1년 후 라인란트에 진주하고, 38년 오스트리아를 점령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베르사유조약 체결 때와 달리 무기력했다.
독일이 체코슬로바키아의 수데텐 지방을 요구하자, 영국·프랑스·이탈리아 지도자들은 1938년 9월 뮌헨에서 히틀러와 회담을 열고 “더 이상의 영토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수데텐 병합을 승인했다. 히틀러는 그러나 1939년 체코슬로바키아를 합병하고 폴란드를 침공했다. 제2차 세계대전은 이렇게 시작됐다.